[김만선 칼럼] 인간에 대한 예의
[김만선 칼럼] 인간에 대한 예의
  • 김만선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1.29 1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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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나 자신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릴 때가 있다. 팀워크가 필요한 게임에서 팀 승리에 대한 고민이나 동료에 대한 배려 없이 개인의 이익만을 좇는 사례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5명의 팀원이 열 개의 구슬을 나눠가지되 먼저 구슬을 선택하는 사람이 원하는 만큼 취할 수 있다고 할 때, 한 사람이 냉큼 열 개를 모두 가져가버리는 식이다. 5명이 두 개의 구슬을 가지면 팀도 승리하고 공평할 수 있다는 상식을 단번에 깨버리는 것이다. 팀원에게 미안해 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마음도 없다.

동료들은 배신감에 혀를 내두르고 허탈감에 빠지지만 상황이 바뀌어 자신에게 우선권이 주어지면 그도 결국 똑같은 선택을 한다. 만약 팀 동료를 배려해 두 개의 구슬을 선택한 경우에도 그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 자신의 이익을 좇는 동료에게 이용당하거나 배신당하고 말기 때문이다.

토크쇼의 진행자들이 패널에게 면박을 주거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 억지 웃음을 유도하는 경우도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례다. 진행자와 패널은 끝없는 폭로전과 방어전을 펼치며 웃음을 유도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로서는 불편할 때가 많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게임의 법칙'에는 승자만 존재하는 듯 하다. 동기나 과정은 철저히 무시된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권모술수가 판치고, 배신과 야합도 서슴지 않는다. 승자에게는 박수가 가고 패자에겐 가혹한 벌칙이 따른다.

예능프로그램을 보다보면 언제부터인가 상식과 비상식의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옳고 그름도, 정의와 불의도 마찬가지다.

이같은 현상은 정치권도 예외가 아닌 듯 하다.

너나 할 것 없이 진영의 논리가 팽배해있다는 생각이다. 안으로는 견고히 방패의 진을 치고 밖으로는 날카로운 창을 겨누며 상대의 틈을 노리는데 집중하고 있다. 오직 아군과 적군만이 있을 뿐이다.

자신이 속한 정당의 주의, 주장에는 무조건 지지의사를 표명하고 다른 당의 주장이나 요구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로 ‘'반대'를 외친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하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의원들 사이로 비난의 목소리가 오가는가 하면, 육두문자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이같은 입장도 정당 내부의 개인 대 개인으로 가면 달라진다.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경쟁 상대를 폄하하고,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들은 적당히 눙치며 넘어가려고 애쓴다.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서로를 폄하하기 좋아하고 권모술수가 능한 모습은 자주 보이는데 진영의 논리를 벗어나 잘못된 것을 과감히 드러내고 상대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자신을 낮추는 정치인은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답답하다. 사탕발림으로 자신들의 주의나 주장을 내세우는 이들은 많아도 하루 하루 힘겨운 삶을 사는 서민의 땀을 닦아주거나 노동으로 접힌 허리를 펴주려 애쓰는 사람은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단 한 번도 의견을 물어본 적이 없으면서 ‘'국민의 뜻'이라느니 ‘'국민이 좌시하는 않을 것'이라는 등의 표현이 등장할 때면 한 숨이 절로 나온다.

지나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는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해친다. 마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처럼 전쟁을 방불케하는 개인주의는 승자에게 달콤한 선물을 안겨주는 대신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잃게 만들었다.

게임의 법칙에는 오직 승자와 패자만이 존재하는 것일까. 승자가 패자가 되고 패자가 승자가 되는 ‘'아름다운 게임'은 없는 걸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 개의 구슬을 갖는 연예인을 보며 박장대소하지만 그렇다고 문제의 본질마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상식과 비상식의 경계는 모호해졌는지 몰라도 결코 비상식이 상식이 될 수는 없다.

요즘은 남을 배려해 구슬 두 개 만을 선택하기보다는 혼자서 열 개를 갖는 예능프로그램이 먹히는 시대다. 하지만 이같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우리가 잃어버려서는 안될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인간에 대한 예의'다ⓒ광주N광주 noljagwangj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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