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산(若山) 김원봉 평전
약산(若山) 김원봉 평전
  • 장암 기자
  • 승인 2019.06.07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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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 김원봉 평전,시대의 창
약산 김원봉 평전,시대의 창

[광주N광주=장암 기자]

강추(199) 일천독(20190607)

약산(若山) 김원봉 평전
https://esidae.tistory.com/237

일천독, 하루 한 편 칼럼이나 기사를 찾는 일에도 속도가 있습니다. 한 눈에 들어와 짧은 시간 쉽게 찾을 때 있고, 아무리 뒤져도 적당한 글과 자료 하나 찾기 어려울 때 있습니다. 오늘은 후자입니다. 

심기를 더 불편하게 하는 건, 약산 김원봉 선생 관련 기사들입니다.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 중 언급한 내용을 가지고 이전투구합니다. 김원봉 선생에 대해 제대로 안다면, 그리 막말 못합니다. 처벌받은 친일파가 단 한 명도 없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입니다. 친일의 후예, 독재의 후예가 정치와 경제 전반에 권력으로 힘쓰고 있는 대한민국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책 한 권 사서, 작심하고 보시게요. 이념사냥에 분개하기 보다, 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 김원봉 선생을 알아보시게요. 남과 북 모두에서 사라져버린 약산 선생을 '해방'시켜 드리시게요.

 

▼ 평전 출판사 서평 ▼

  "아직도 ‘해방’되지 못한 20세기 최고의 독립운동가 , 격동의 시기에 태어나 조선의 독립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한 약산 김원봉 선생. 

그는 일제 관헌이 그 이름만 들어도 오금을 저렸다던 의열단을 창단하고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항일운동을 전개한 20세기 한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다. 의열단장,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교장, 조선민족혁명당 당수, 조선민족전선연맹 대표, 조선의용대 총대장, 광복군 부사령관 겸 제1지대장,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장, 인민공화당 대표, 국가검열상, 노동상 등 그가 역임한 직위만도 10개가 넘는다. 

광복 뒤 환국한 조국에서 그를 기다린 것은 테러의 위협과 정치적인 모략이었다. 그는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좌우의 이해관계 속에서 정치적 입지가 축소되었고, 이승만 세력에 빌붙은 친일 세력들로부터 온갖 수모를 겪는다. 결국 김원봉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월북을 감행한다. 그러나 북한에서도 1958년 이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남과 북 어디에도 그의 설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우파의 김구 선생과 함께 만주 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 지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도 역사 속에서 해방되지 못한 채 60여 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남한에서는 월북했다는 이유로 그리고 북한에서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정치적 모략 속에서 그를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되어왔기 때문이다. 

약산 김원봉에 대한 평전다운 최초의 평전  
약산 김원봉은 남한과 북한 정권으로부터 ‘반역자’ 취급을 받고 철저히 배척되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대표적인 의열투쟁과 관련된 일반적인 기록을 제외하고는 그에 대한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런 이유로 약산 김원봉을 다룰 때는 보통 ‘픽션’ 형태를 취하거나 추측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김삼웅은 30여 년간 수집한 각종 자료를 토대로 약산 김원봉의 삶을 가장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묘사했다. 의열단 창단의 의의, 단재 신채호의 《의열단선언》 집필 배경, 조선의용대 창설과 한국광복군에 합류하게 된 실질적인 동기 그리고 월북과 그의 의문의 죽음 등 역사적인 사실 이면에 숨어 있는 ‘진실’을 재조명한 것이다. 이 책에는 일본 정보기관의 기록, 각종 증언록 등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자료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 때문에 기존의 어떤 책보다도 약산 김원봉을 심도 있게 다룬 평전다운 최초의 평전이라고 할 수 있다. 

광복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 김원봉에 대한 평가가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할 때다. 김원봉의 월북과 의문의 죽음을 비롯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많은 문제들이 남아 있다. 이 책은 김원봉이란 존재를 진정으로 ‘해방’시키고 한국현대사의 전면으로 이끌어내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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