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과 솟대
가로등과 솟대
  • 장암 기자
  • 승인 2019.06.20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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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205) 일천독(20190620) - 가로등과 솟대
(중앙일보 '[최범의 문화탐색] 가로등은 어쩌다 전기 솟대가 되었나' 클릭 ☞ https://bit.ly/2ItCJnO)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오후엔 전남지역 사회복지 공직자들을, 저녁엔 여민동락공동체 가족들과 마을주민들을 만납니다. 

강의를 수단삼아 반갑게 만나지만, 밖으로만 떠돌다 오랜만에 집안 사람들 앞에 서려 하니, 어찌된 일인지 떨리고 설렙니다.
옷이라 해봐야 두어 벌 뿐인데,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 아닌 고민까지 합니다. 

진정한 벗들에 대한 예의라 할까요? 고락에 관계없이 가족처럼 아끼고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벗입니다.
관계의 질을 더 높게 키워가야 할 이유입니다. 불필요한 관계들을 정리하고 진정한 벗들과 우애하고 살아야 할 근거입니다.
아무튼 설레는 출발입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칼럼과 사설을 읽는데, 마땅한 내용이 없습니다.
새로운 시선이 있어 중앙일보 최범의 문화탐색을 골랐습니다.
디자인 평론가답게 평범(가로등)을 비범(솟대)으로 해석한 다름이 좋습니다. 

장승과 솟대를 좋아합니다. 이유는 없습니다.
칼럼 내용대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신성의 반영일까요?
혼잡하고 민망하게 곳곳에 만들어 놓은 국적불명 불빛기둥(루미나리에)보다 고래, 사과, 까지를 형상화 한 가로등이 더 정겹습니다.
한국식 공원, 신성한 소도를 꿈꾸는 필자의 꿈이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내게는 꿈이 하나 있다. 그것은 전국 243개 지자체의 가로등을 하나씩 뽑아다가 지리산 세석평전에 전기 솟대 공원을 만드는 거다.
그것은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토템 폴 공원에 뒤지지 않는 멋진 한국식 공원이자 신성한 소도(蘇塗·삼한시대 제의 장소)가 될 것이다.
나는 미래의 후손들에게 현재 한국인의 삶을 전해주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예를 찾지 못한다. 미국에 ‘번개 치는 들판’이 있다면, 한국에는 전기 솟대 공원이 있다.
정말 멋지지 않겠는가. "

"수직적 구조물은 대체로 어떤 종교성 내지는 주술성을 띠게 마련이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땅과 하늘의 관계를 지시하기 때문이다.
무당을 가리키는 ‘무(巫)’라는 글자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기둥을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사람이 서 있는 형상인데, 이것이 의미하는바 또한 그러하다.
이집트의 오벨리스크, 고딕성당의 첨탑지붕, 현대의 고층건물, 각종 기념비 등 모든 수직적 구조물들은 그러한 작용을 한다. "

"언제부터인가 지역을 다니다 보면 기묘한 형상이 올라가 있는 가로등을 만나게 된다.
수원 월드컵 경기장 주변의 가로등에는 축구공이 끼워져 있고, 울산 장생포에 가면 가로등을 아예 돌고래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다.
또 어디에는 사과, 어디에는 고추, 인삼 등 다양한 사물들이 한국의 가로등을 장식하고 있다.
이것만 모아도 가히 현대판 『동국여지승람』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이다. 과연 우리에게 가로등이란 무엇일까.
온갖 장식을 매달고 있는 가로등은 과거 동네 어귀에 세워놓았던 장승이나 솟대와 무엇이 다른가.
전통은 민속촌이 아니라 전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엉뚱하게 계승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여, 한국에서 가로등은 현대판 장승이며 전기 솟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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