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머 씨 이야기_파트리크 쥐스킨트(유혜자 옮김)
좀머 씨 이야기_파트리크 쥐스킨트(유혜자 옮김)
  • 김효신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7.23 10: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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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머물 수 없는 침략의 전쟁논리 속 희생양은 아니었을까?

좀머 씨 이야기

 

좀처럼 머물 수 없는 침략의 전쟁논리 속 희생양은 아니었을까?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장 자끄 쌍빼 그림.  유혜자 옮김.  1992.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장 자끄 쌍빼 그림. 유혜자 옮김.
출판 열린책들. 초판 1992.

{아주 고집스러우면서도 절망적인 몸짓으로 지팡이를 여러 번 땅에 내려치면서 크고 분명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중략)

그리고 아저씨는 그렇게 위로 솟구친 다음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가 물 이 다시 목까지 찼다가, 목구멍까지 찼고 이어서 턱 위까지 …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에 아저씨의 모습은 사라졌다. 밀짚모자만이 덩그마니 물위에 떠 있었다.

-본문 중 }

이 책 역시 3번 이상을 읽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나의 이야기 속에서 부모와 친구들, 살던 동네 등 빠질 수 없는 기억들이 동아줄처럼 엮어 올라온다. 그 속에 조용하면서도 절대 빠지지 않던 밑그림처럼 깔려 있는 <좀머> 아저씨의 이야기를 <나>의 어린 시절과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아주 재밌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 속에 나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국경을 넘은 공감과 나의 어린 시절에도 옆에 가기 두려운 혼잣말과 욕을 하는 아저씨가 있었다. 쾨쾨한 냄새와 기괴한 표정으로 혼자이기를 바라는 좀머 씨의 이야기의 동질화만 보였다.

또 한 번 읽었을 때는 <죽음>의 두 시각이 보였다. 첫 번째 죽음은 한번쯤 상상해 봄직한 내가 죽었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의 죽음, 두 번째는 어느 날 정말로 목격하게 된 좀머 아저씨의 죽음이었다. 상상 속의 죽음은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나에 대한 어떤 말을 해 줄까하는 유쾌한 놀이의 죽음이었다면 현실 속 죽음은 어린 내가 생각지 못했던 순간에 펼쳐지는 공포와 고요함의 실체로 비로소 쉴 수 있는 쉼의 죽음을 목격한다.

그리고 또 다시 읽었을 때는 비로소 <좀머> 씨만 보였다. 진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한 인간의 삶이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혼자이기를 바라는 불편한 이웃, 방해받기를 싫어하는 이웃인 좀머 씨다. 남들과 섞이지 못하는 아웃사이더 좀머 아저씨의 행동에서 전쟁을 참가했던 폐잔군인으로 자기 안에 갇힌 전쟁의 공포와 두려움의 숨바꼭질의 상처라 생각했다. 전쟁의 상처를 ‘걷다’로 일관하는 침묵의 걸음에서 우리가 그를 내몰리는 건 아닐까? 그가 사람들을 피하는 존재가 아니라 아무도 물어봐 주지 않는 현실의 마주침을 좀머 아저씨는 세상의 괴리자로 살아왔다. 그에게 유일한 소통의 창이었던 아내의 죽음과 소통 창구가 사라진 껍질뿐인 자신의 생을 자살을 통해서 ‘쉼’이라는 명징한 대답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좀머 씨만 뺀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이미 전쟁이 끝난 평온하다 못해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었고, 죽기직전까지의 좀머 씨의 삶은 전쟁으로 인해 송두리째 멈춰버린 괘종시계처럼 좀처럼 머물 수 없는 침략의 전쟁논리 속의 희생양은 아니었을까? 또 한 번 더 읽는다면 어떤 좀머 씨를 마주할까?

ⓒ광주N광주 jinrin7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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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난다 2019-07-23 10:16:11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