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대칼럼] 공공갈등을 예방하고 조정하는 제도를 왜 활용하지 않는가?
[이성대칼럼] 공공갈등을 예방하고 조정하는 제도를 왜 활용하지 않는가?
  • 이성대 칼럼니스트
  • 승인 2018.11.11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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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대 칼럼니스트
이성대 칼럼니스트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여기저기 낙엽이 뒹굴고 산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이 절정이다. ‘서리에 물든 단풍이 2월의 꽃보다 더 붉다’(霜葉紅於二月花,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두목杜牧의 시, 산행山行 중 한 구절)는 옛 시인의 싯구가 아니더라도 단풍은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 오히려 절정을 지나 상실의 계절로 접어드는 느낌이다.

산행 중 만나는 나무 중에 칡나무와 등나무가 있다. 생명력이 질기기로 유명하다. 칡과 등은 땅속으로 뻗어가는 뿌리의 힘도 대단할 뿐만 아니라 덩굴로 얼기설기 섞여서 자라는 줄기의 힘도 대단하다. 그러므로 옛사람들이 사람과 사람간의 이해관계의 충돌로 인한 다툼과 충돌을 칡나무와 등나무를 뜻하는 한자말, ‘갈등(葛藤)’이라고 표현한 것은 탁견이 아닐 수 없다. 세상사의 다툼과 충돌이 그만큼 뿌리 깊고, 무성하여 끈질기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람들은 역사 이래로 이런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고심해 왔다. 사법절차를 의미하는 송사를 통해서 해결하기도 하고, 민간의 권위있는 어르신의 중재를 통해 해결하기도 했다. 집단적 갈등이라면 정치적 과정을 통해 해결하는 방편을 취하기도 했다.

현대 민주사회에서도 갈등이 존재하고, 이를 해결하는 모습도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좀 더 체계화되고 투명해진 점이 다를 뿐이다. 사법절차를 따르는 경우가 있고, 중재와 조정이라는 대안적 절차를 따르거나 정치적 의사결정이라는 절차를 통해 해결하기도 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뿌리깊은 갈등 중에서도 공공갈등은 공공기관의 정책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충돌로 인한 갈등을 말한다. 공공사업을 추진하는 공공기관과 민간의 이해관계인의 대립 또는 공공사업을 둘러싼 민간 이해관계인 간의 대립이 주를 이루고 있다. 최근 광주에서 진행된 도시철도 2호선을 둘러싼 찬반양론이나, 군공항 이전문제, 한전공대 설립문제 등이 현재 진행되고 있거나 또는 가까운 미래에 현재화될 수 있는 공공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 또는 단체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고, 개별적 사회주체들의 이익이 첨예하게 맞서는 현대 민주사회에서 공공갈등은 불가피하고 자연스런 과정이다. 갈등과정이 사회에 분란을 초래하고,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하는 경우도 많지만 사회의 역동성을 강화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 절차를 제고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다. 당연하게도 공공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는 풀기 쉽지 않은 과제다.

공공갈등이 일단 발화되면 쉽게 불을 끄기 어렵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는 문제다. 원자력발전소 건설이나 방사능폐기물저장소 건립을 둘러싼 위치선정 문제, 제주군항 건설문제, 행정수도 이전문제, 싸드(Thaad) 배치문제 등 국가적인 차원에서 발생한 공공갈등만도 셀 수 없이 많다.

광주지역만 하더라도 멀리는 전남도청 이전을 둘러싼 갈등, 2순환도로 건설을 둘러싼 찬반논쟁,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과 관련한 옛도청별관 보존문제, 어등산관광단지 개발문제, 신세계백화점 특급호텔 건립문제, 옛도청 5·18유적 복원문제, 광주공항 및 군공항 이전문제, 도시철도 2호선 건립문제 등을 둘러싼 치열한 찬반논쟁이 쉴새없이 이어져온 공공갈등 사례로 떠오른다.

이런 지속적인 공공갈등에 대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 행정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공공갈등의 사전예방과 조정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법령과 조례를 제정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6년 대통령령으로 제정되고 시행된 공공기관의 갈등예방과 해결에 관한 규정과 동 시행규칙이 대표적이다. 이를 모델로 해서 광주, 서울, 부산, 인천, 대구세종 등 전국 대부분의 광역 지방자치단체와 많은 수의 기초 자치단체는 공공갈등 예방과 조정·해결을 위한 조례를 제정해 두고 있다. 광주광역시의 경우만 하더라도 광주광역시가 2016년에 갈등예방 및 조정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였고, 2015년에 이미 선도적으로 조례를 제정한 북구를 비롯하여 남구, 서구가 순차적으로 유사한 내용의 조례를 제정해 두고 있다.

공공갈등에 관한 대통령령과 각 지자체의 조례내용을 살펴보면 핵심사항은 공공갈등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노력이다. 갈등관리위원회와 갈등영향평가제를 두어 예상되는 공공갈등 요인을 최소화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갈등이 불가피하게 발생한 경우에는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정보의 공유·공개를 통해 이를 민주적으로 해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소한 법령과 제도상으로는 공공갈등의 예방과 조정·해결을 위한 절차들이 잘 규정돼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제도와 규정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도시철도 2호선을 둘러싼 치열한 찬반논쟁이 진행되고 있을 때도 광주광역시에 이미 제정돼 있는 공공갈등 조례를 활용하자는 의견은 보지 못했다. 결국 시민공론화위원회를 통해 해결하는 절차를 밟았고, 이것도 공공갈등을 조정하는 한 절차라고 할 수도 있지만 기존 제도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치구에 마련돼 있는 공공갈등 조례도 마찬가지다. 조례에 규정돼 있는 공공갈등의 사전예방을 위한 노력이 제대로 진행된다면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다른 지역에 비해 특히 빈발하는 것으로 보이는 광주지역의 공공갈등 상황에서 행정기관의 예방을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존에 마련돼 있는 절차에 대한 연구와 실행을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지방자치단체의 생리상 단체장의 의지가 결정적인 것도 사실이다. 공공갈등과 관련해 이미 마련된 제도를 시행하고, 문제점을 보완하여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 인권과 관련한 전국적인 회의에 가보면 광주에 대한 평가가 매우 높아서 기분이 좋았던 적이 있다. 그러나 갈등조정과 관련한 전국 회의에 가보면 광주의 위상은 매우 낮았다. 광주가 갈등을 제대로 예방하거나, 조정하지 못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 민주주의와 인권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한번 도달했다고 해서 끝나는 등산과 같은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삶의 여정과도 같은 것이다. 태도와 방식이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 광주가 민주주의를 선도하는 도시로서 인권분야뿐만 아니라 공공갈등의 예방과 조정에 있어서도 끊임없이 나아가는 도시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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