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성_오르한 파묵(이난아 옮김)
하얀 성_오르한 파묵(이난아 옮김)
  • 김효신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1.18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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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이며, 너는 나인가?

하얀 성

-나는 누구이며, 너는 나인가?

작가 오르한 파묵.이난아 옮김.출판 민음사.2011.

[ 나보다 대여섯 살 많아 보이는 사람이 들어왔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으며, 갑자기 두려워졌다.

중략...

방으로 들어온 남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나와 닮아 있었다. -본문 중 ]

[ 나무 사이로 날아가듯 지나가는 누군가를 보고 놀랐다, 나였다. 수염이 긴 내가 그곳에서, 발을 땅에 대지도 않은 채 소리 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본문 중 ]

[ 그는 동방에서 수입된 비싸고 깨끗한 종이에 매일 아침 ‘왜 나는 나인가’라고 쓰기 시작했다.

중략...

우리의 진짜 생각을 써야 한다고 했다. 거울을 들어야보면 자신의 모습이 보이듯,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면 본질을 볼 수 있다고. -본문 중 ]

17세기 베네치아에 살던 젊은 학자인 ‘나’는 나폴리로 향하던 배가 오스만 제국 함대에 사로잡히면서 이스탄불에서 노예 생활을 하게 된다. ‘나’를 노예로 삼은 ‘호자’라는 남자는 각종 학문, 특히 과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놀랍게도 그의 외모는 ‘나’와 아주 닮았지만, 오직 노예가 가진 학문적 지식과 그가 살던 나라 이탈리아에만 관심을 보인다. 모든 면에서 쌍둥이처럼 닮은 두 남자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에서 점점 동지애가 싹트고, 나아가 서로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가끔 나와 닮은 누군가가 지구 어딘가에 살고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해 본다. 나 역시 나와 같은 외모에 서로 다른 사상과 지식을 가진 또 다른 ‘나’를 마주 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하곤 했다. 이 책은 단순히 노예와 주인의 두 사람이 외모가 닮고 가지고 있는 동서양의 사상을 교류하는 이야기만을 말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왜 나인가? 왜 우리인가? 왜 너이고 또 다시 나인가’라는 본질적으로 묻고 있다. 서로 다른 삶을 살면서 결국 마주 하는 ‘나’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학문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각자의 국가의 이상과 사상을 전파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결국은 하나다, 라는 걸 말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본다.

오르한 파묵은 필자가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 작가는 한 곳에 정제되어 있는 삶을 보여주고 말하지 않는다. 인간은 모두 하나의 원 안에서 이루어진 생명체이자 함께 해야 하는 운명 공동체라는 것을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서 우리에게 좀 더 쉽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작가이다.

ⓒ광주N광주 jinrin7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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